전시 서문

우리가 마주하는 정원에는 꽃만 남아 있습니다.

정원은 다듬어진 꽃과 나무, 돌의 균형으로 눈앞을 채우지만 그 이전의 시간은 대개 지워집니다. 꽃이 피기 전 움트던 틈, 흙 속에서 얽히고 갈라진 뿌리, 스스로를 다듬으며 자라난 수많은 가지들은 흔적으로조차 남지 않습니다.

단초전 세 번째 <사라진 정원 속 레이플로렛〉은 사라진 정원 속 흔적을 더듬습니다. 완결된 작품만이 아니라 도중에 흘린 사유와 시행, 실패와 단서들 ― 흔히 스쳐 지나간 파편으로 여겼 던 순간들을 이번 전시에 다시 불러냅니다. 봄이 저물 무렵 후- 하고 불던 하얀 민들레 홀씨는 온전한 꽃이 흩어지는 잔해가 아니라 이미 작은 꽃 하나하나가 모여 이루어진 집합이었습니다. 레이플로렛은 꽃송이의 일부이자 동시에 독립된 꽃이며 바람을 타 흩어져 또 다른 자리에서 뿌리내릴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작업의 과정 또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기록, 실험, 실패, 단서 하나하나가 모여 작품을 이루는 동시에 각자의 자리에서 이미 하나의 완전한 조각이자 시작점이 됩니다. 이번 전시는 그 작은 단초들이 다시 모여 이루는 정원의 한 순간을 드러냅니다.


기획

허소운

참여작가

강가희, 강나현, 강혜지, 고은, 김부겸, 김성준, 김예림, 김태현, 김택기, 남하영, 박소형, 박예주, 박준우, 박지은, 박형준, 방상환, 변현우, 손우현, 손윤경, 심현수, 장두루, 안선홍, 옥영철, 장건율, 조현수, 천정민, 최수연, 한애, 한혜림, 허민혁, 허소운